안상홍 선생, 안식교 침례일자는 1954년이 맞는가?

새롭게 드러난 증거들을 살펴보자

안상홍 선생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962년 3월 경 안식교로부터 제명을 당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안상홍 선생은 그의 저서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1968, 4판)에 실린 간증문(pp. 8-9)에서 부산시 동래구 재송동에 소재한 안식교회에서 1956년 2월 3일 행해진 목사의 설교내용을 인용하였다. 1956년도에 안상홍 선생은 재송동교회 소속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 중 간증문, “1956년 2월 3일 부산시 동래구 재송동교회”라고 기록되어 있음]

그런데 1962년 3월경 안상홍 선생이 제명될 때 그는 재송동교회 소속이 아니었다. 그를 제명한 곳은 안식교 해운대교회였다. 자료에 의하면 그는 1957년 경 안식교 재송동교회에서 같은 안식교 해운대교회로 소속교회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안식교 측의 자료에 의하면 동래구 재송동에 있는 안식교회는 1920년경 설립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성장에 따라 1954년에 수영구에 수영교회를 분가하였고, 1955년에는 해운대구 우1동에 해운대교회를 분가하였다. 안상홍 선생은 운촌마을(우1동)에 거주하였으므로 가까운 지역에 교회가 분가하자 출석교회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안식교 재송동교회,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로 319 소재, 1956년 당시 동래구 관할이었으나 1980년에 해운대구로 관할이 바뀜]

[안식교 해운대교회, 부산시 우동1로 127 소재]

안식교측의 자료 중에서 안상홍 선생에 대한 기록은 해운대교회의 교인명부에 나타난다. 1955년경 재송동교회로부터 분가한 해운대교회는 1958년 7월경 교인명부를 새롭게 정리한 바 있다. 바로 1958년에 작성된 해운대교회 교인명부에서 안상홍 선생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고 있다.

[해운대에 있는 안식교회 내부, 설교 단상에 교인명부인 녹명책을 올려 놓고 사진을 찍어 증거로 삼음]

[1958년부터 기록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보관되어 온 교인명부 원본, 표지에 ‘녹명책’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다.]

안식교 해운대교회의 교인명부는 정식 명칭으로 ‘녹명책’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에서는 이 녹명책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생명책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위 녹명책에 기록된 명부가 침례를 받은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자는 1955년에 재송동교회로부터 분리된 해운대교회가 3년쯤 후인 1958년 7월경에 만든 책인데, 침례자를 순서대로 기록한 생명책이 아니라, 그때까지 전입한 교인들을 한꺼번에 정리하여 기록한 교인 명부였을 뿐이다. 따라서 침례받은 순서와는 무관한 책이다.

[녹명책 첫 페이지를 열면 이 명부를 기록할 때 주의해야 할 다섯가지 사항이 인쇄되어 있음]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한번 기록한 내용은 함부로 정정할 수 없다. 2. 녹명책은 영구 보존한다. 3. 입교자가 생겼을 경우 즉시 기록한다. 4. 주소 이전으로 인해 소속교인이 전출입할 경우 해당기록을 전출입교회로 보낸다. 5. 어떤 교인이 제명 또는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유와 일자를 즉시 기록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해운대교회의 녹명책은 1958년 7월 18일에 작성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기록을 시작할 때는 1955년 분가할 때 재송동교회에서 한꺼번에 옮겨온 교인들과 그 후 3년간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교인들이 혼재한 상태에서 작성되었다. 따라서 침례 받은 순서와 관계없이 전입한 교인 명부를 무작위로 작성한 것이다.

[1번 교인부터 명부를 기록하기 전에 ‘1958년 7월 18일 현재’라고 적혀 있다. 해운대교회가 재송동교회로부터 1955년에 분가하였으나 그후 3년이 지나서야 녹명책(교인명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물론 1958년 7월 18일 이후에 전입한 교인들의 경우에는 전입한 순서대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1958년 7월 18일 이후 새롭게 침례를 받은 경우가 있다면 당연히 그때부터는 침례 받은 순서대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해운대교회의 녹명책은 타 지역교회로부터 전입된 경우나 새롭게 침례를 받은 경우를 구분하지 않고 순서대로 기록한 교인명부이다. 따라서 전입자의 경우 새로 침례를 받고 기록된 사람보다 뒤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침례 일자는 훨씬 앞서 있을 수밖에 없다.

안상홍 선생의 경우, 1957년경 재송동교회에서 해운대교회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 이전 또는 그 이후에 전입한 사람들과 섞여서 기록되었고, 따라서 침례 받는 순서와는 관계없이 기록되었다.

[녹명책은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1번부터 7번까지 기록한 첫 장을 복사한 것이다.]

[오른쪽 두번째 장에 8번부터 14번까지 기록되고, 왼쪽 세번째 장에 15번부터 22번이 기록되었다. 오른쪽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항목란이 있어 7명이 기록되었고, 왼쪽 페이지에는 항목란이 없어 8명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에 네번째 장이 시작되고 23번부터 29번까지 기록되어 있다. 안상홍 선생은 23번에 기록되어 있다. 안상홍 선생의 처인 김움전 여사는 29번에 기록되어 있다.]

해운대교회의 교인명부에 의하면 안상홍 선생은 1954년 10월 9일 동래구 재송동에 있는 안식교회 김석영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으며, 그후 1957년경 해운대교회로 교회를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가 유월절 등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새로운 주장을 하다가 1962년 3월 31일 해운대교회로부터 제명되었다.

아래 사진에 보면 이 녹명책의 23번째로 안상홍님이 기록되어 있고 29번째로 안상홍님의 아내인 김움전 여사가 기록되어 있다. 김움전 여사는 1924년 3월 30일 경상남도 출생으로 1954년 10월 9일 안상홍님과 같은 날 김석영 목사에게 침례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운전은 안상홍 선생의 첫번째 부인이다.

이 녹명책에 의하면 안상홍님은 경남 출생으로 1917년 1월 13일에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녹명책에 기록된 년도는 모두 단기년도여서 서기로 하자면 2333을 빼야 한다. 단기 4250년은 서기로 하면 1917년이 된다.

[안상홍 선생의 출생에 관한 기록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생년월일은 단기 4250년 즉 서기 1917년 1월 13일이라고 기록됨]

안상홍님은 해운대교회에서 제명되었으며 제명된 날짜는 서기 1962년 (단기 4295년) 3월 31일이었고 제명 사유는 절기파로 기록되어 있다. 안식교 내에서 유월절 등 3차 7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출교를 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상홍님에게 침례를 베푼 사람은 김석영 목사이며 안식교 측의 자료에 의하면 1950년경부터 재송동교회 담임목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침례일자는 서기 1954년(단기 4287년) 10월 9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상홍 선생의 침례일자와 집례자에 대한 기록이다. 김석영 목사가 집례자이고, 침례를 받은 날은 단기 4287년, 서기 1954년 10월 9일로 기록되어 있음]

[안상홍 선생의 제명된 일자와 그 사유가 기록되어 있다. 제명사유는 절기파였기 때문이고, 제명된 날자는 단기 4295년, 서기 1962년 3월 31일로 기록되어 있음]

위에 사진으로 보여준 안식교 해운대교회의 녹명책은 1958년부터 기록한 원본 그대로이다. 안상홍님이 그 교회로부터 제명되기 4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책이다. 따라서 안식교에서 안상홍님을 모함하기 위해 제명되기 4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미리 침례일자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김주철 목사)나 새언약유월절 하나님의교회(안광섭 목사)에서는 안상홍님이 1948년 12월 16일 인천 낙섬에서 이명덕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침례일자를 조작하여 다윗왕위 예언에 꿰어 맞추고 있는 셈이다.

안식교 측에서는 이명덕 목사라는 인물이 안식교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나 새언약유월절 하나님의 교회에서 만든 유령인물인 셈이다. 안상홍님 출생지가 전남 장수군 명덕리라는 데 착안하여 ‘명덕’이란 명칭을 따서 붙인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볼 뿐이다.

또한 안상홍 선생은 재송동교회에서 해운대교회가 분리되고 나서 옮겨간 교인이었기 때문에 재송동교회의 기록을 인수인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교인들끼리 다 아는 처지에 침례년도나 일자를 착각했을 리 없다. 만약에 교인 당사자에게 물어서 침례일자를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안상홍님이 1948년도에 침례를 받았다면 6년이나 늦게 받았다고 교회에 이야기 했을 리도 없다.

해운대교회 녹명책은 1958년부터 최근까지 기록이 계속 유지되어 온 책이다. 중간에 잘못된 기록이 발견되더라도 함부로 정정하기 못한다. 반드시 삭선을 하여 정정하기 때문에 원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관리되는 책이다. 모든 기록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조작할 수가 없는 책이다. 1954년에 김석영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는 안상홍님에 관한 해운대교회의 기록은 1958년에 작성되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된 것이어서 가장 확실한 증거자료라고 보아야 한다.

안상홍 선생의 침례받은 년도는 위와 같이 너무나 명백하게 자료와 증거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김주철 목사)나 새언약유월절 하나님의교회(안광섭 목사)는 안상홍님을 신격화하여 하나님으로 받들고 있다. 더우기 자신들의 오류를 합리화하려고 안상홍님의 침례받은 년도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일찌기 엄수인은 1977년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란 책자를 내고, 다윗왕위의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안상홍님을 재림예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엄수인은 “안상홍님은 1951년에 침례를 받았으며 다윗왕위 예언을 이루기 위해 37년간 복음을 한 후에 1988년 14만 4천과 함께 승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안상홍선생의 침례받은 년도를 1951년이리고 조작하여 재림예수로 신격화하려는 시도는 엄수인이 최초였다.

엄수인의 주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두 개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naver.com/ceongkim/221973959847 – 엄수인의 최초주장 “육체로 오신 하나님”

http://blog.naver.com/ceongkim/221982634293 – 엄수인 책자,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 전면 공개

사실은 여러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1985년 2월까지도 서울교회(장길자/김주철)에서는 위와 같은 엄수인의 주장을 그대로 교회 내에서 가르치면서 1988년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85년 2월에 안상홍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자 장길자와 김주철은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옹립하면서 안상홍님이 1948년에 침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윗왕위 37년의 예언이 그의 1985년 죽음으로 완성되었다며 1948년 침례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상홍님의 갑작스런 죽음을 합리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다윗왕위 예언은 37년으로 해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석한다 할지라도 안상홍님의 침례받은 년도와는 맞지도 않는 셈이다.

다윗왕위 예언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살펴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글에서 시작하여 이어지는 몇개의 글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http://blog.naver.com/ceongkim/221527376228 – 다윗왕위 예언 해석의 오류에 대하여(1편)

https://blog.naver.com/ceongkim/221527388106 – 다윗왕위 예언 해석의 오류에 대하여(2편)

https://blog.naver.com/ceongkim/221527395012 – 다윗왕위 예언 해석의 오류에 대하여(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