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

1.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두 시대로 이루어진 구속의 경륜

전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옛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시대와 새 언약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시대로 나뉜다. 짐승의 희생의 피에 의지하여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직분을 행했던 레위지파 제사장들의 직분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온전한 제사직분으로 변역되었다. 하늘 성소에서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자기의 피를 희생 제물로 삼아 제사직분을 행하신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제사직분은 온전하여 택한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영원한 구원을 이룬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세우신 옛 언약의 제사는 그림자와 모형이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신 새 언약의 제사는 실체가 되었다. 따라서 구속의 경륜을 세 시대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이 각기 다를 것이라는 가정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어긋난다. 사도들은 아담으로부터 심판 날까지 죽은 자와 산자를 무론하고 예수는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라고 가르쳤다.

물론 구약성경에는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는 온전한 것이 나오기까지 모형적인 제사제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킨 예비단계를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말씀이 있다고 해서 예수의 이름이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라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타나기 전까지는 예수로 오실 그 분이 아직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구속의 경륜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구속사업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두 개의 시대로 완성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말세를 맞이하여 수많은 거짓그리스도들이 나타나 마지막시대에 또 하나의 구속의 경륜이 새롭게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주장이 육체로 오신 재림예수 교리이다.

육체로 오신 재림예수 교리의 근거로 사용되는 성경구절이 몇 가지 있다. 본장에서는 마태복음 2819절을 근거로 성부시대와 성자시대 그리고 성령시대로 구속의 경륜을 세 시대로 나눈 후 마지막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육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새로운 구원자의 이름을 섬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 오류를 밝히고자 한다.

2.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이 각기 다르다는 주장의 오류에 대하여

[28:18-19]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위 구절 중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란 표현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교회가 있다.

①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 이상 세 시대로 이루어지며 각 시대마다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이 각기 존재해야 한다.

②아버지의 이름은 성부시대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이고 아들의 이름은 성자시대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③성령의 이름은 마지막 성령시대에 육체로 나타날 구원자 즉 재림예수의 이름이고 성령시대에는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구원을 받는다.

이미 전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두 시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성부·성자·성령시대로 나뉜다는 위와 같은 주장은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우선 문법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란 표현은 단수명사여서 하나의 이름을 의미할 뿐이다. 세 시대를 전제로 세 개의 이름을 의미하려면 이름이 아니라 이름들이라는 복수 명사를 사용했어야 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란 표현에서 시간적인 순서를 나타내는 세 시대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 백번을 양보해서 굳이 같은 표현으로부터 세 시대를 유추하려면 예수님이 세우신 새 언약의 시대 이후 성령시대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성령시대를 별도의 시대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역사하신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셨다. 그렇다면 구약시대도 성령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기에 신약시대도 성령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영적세계로 돌아가신 이후도 여전히 성령으로 역사하시기에 계속해서 성령시대라고 할 수 있다.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심판 날까지 성령시대가 아닌 적이 있는가?

삼위일체란 여호와 하나님이 육체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셨지만 다 같은 한 성령이란 의미이다. 여호와도 성령이요 예수도 성령이시니 모두 한분이라는 의미이다. 성령시대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3. 옛 언약 시대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 “여호와

이제부터 구약시대에는 아버지의 이름도 여호와, 아들의 이름도 여호와, 성령의 이름도 여호와였다는 사실을 살펴보자.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찌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구약시대 아버지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점에 대해서는 기독교인이라면 모두에게 익숙한 내용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다음으로 구약시대에 아들의 이름을 여호와로 불렀다는 사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31-3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요엘 선지자의 위 구절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장차 이루어질 예언이었다.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하였다.

[2:16, 20-21, 33, 36, 38]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중략)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중략)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중략)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중략)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위 두 구절의 말씀은 모두 요엘 선지자의 예언과 짝을 이루어 하신 말씀이다. 사도들의 믿음 속에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서 예수의 이름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요엘 선지자는 장차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을 시대를 예언하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는바, 실상은 예수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구약시대 선지자인 요엘은 신약시대에 아들로 나타나실 예수를 지칭하여 여호와라고 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믿음 속에 잘 녹여져 있다.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아버지의 이름만 여호와였을 뿐 아니라 장차 나타날 아들의 이름도 여호와라고 불렀음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사도들의 가르침과 믿음 속에서는 그렇게 이해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는 구약시대 성령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자.

[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28:25-27]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사야의 글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곧 성령이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여호와였고 장차 나타날 아들의 이름도 여호와, 성령의 이름도 여호와라고 말씀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따로 있고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치는 신약시대에 와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4. 새 언약 시대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 “예수

이제부터 신약시대에는 아버지의 이름도 예수, 아들의 이름도 예수, 성령의 이름도 예수였다는 사실을 살펴보자.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1:20-21]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장차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한 아기로 탄생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그 아기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라고 알려주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기로 태어나시면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신약시대에 와서 아버지의 이름 여호와가 예수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너무 명백하여 별도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로 오셨으니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인 동시에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신약시대에 성령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자.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사도 바울은 죄인들을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에 대하여 26절에서 성령이라고 하였고 34절에서는 예수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가르침 속에 성령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모습을 나타낸 표현일 뿐 또 다른 별개의 인격체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이름이 별도로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예수가 성령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전도 후 무시아라는 곳에 이르러 아시아 지역인 비두니아로 전도 여행을 하려고 애쓰되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지 않으셨다. 결국 사도 바울은 지금의 유럽인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전도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말씀을 전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지역에서 전도하려는 계획을 변경하여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역사를 기록하면서 6절에서는 성령께서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막으셨다고 하였고 7절에서는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 속에 성령시대가 별도로 구별되거나 성령의 이름이 별개도 존재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가 곧 성령이시고 성령의 역사나 새 언약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동일한 한분의 역사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시대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인 동시에 아들의 이름도 예수이고 성령의 이름도 예수이다. 즉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예수이다.

5. 신약의 사도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직접 들었던 사도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이름이 각기 다른 세 개의 이름인지 아니면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인지 확인할 수 있다.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19:4-5]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베드로도 바울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순교를 각오하고 전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 만약 예수의 명령이 시대별로 각기 다른 세 개의 구원자의 이름을 의미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베드로나 바울은 예수의 이름외에 적어도 여호와의 이름만큼은 함께 불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기록은 성경에도 없고 역사적인 기록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사도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6.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에 구원의 능력이 있었는가?

구약시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여호와였으나 여호와의 이름에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옛 언약의 제사는 모형과 그림자일 뿐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을 섬겼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언약이 완성된 후에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었다.

베드로의 설교에 담긴 가르침은 신약시대 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 모세율법을 따르던 당시 예루살렘 백성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다.

[4:11-12]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새 언약의 제사로 죄 사함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살아있는 신약의 성도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옛 언약을 따르며 약속을 믿고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은혜였다. 예수로 인하여 살아있는 신약교회의 성도들과 이미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시에 구원의 권능이 주어졌다.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 즉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분들이 약속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새 언약을 통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11:1-40] 이 사람들(구약시대 믿음의 선진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새 언약)을 예비하셨은즉 우리(신약교회 성도들)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옥에 있는 영들에게 새 언약 복음을 전파했다고 기록하였다.

[벧전3:18-19]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벧전4:5-6]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많은 구약의 백성들이 하늘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드려진 제사제도에는 온전한 구원의 능력이 없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새 언약의 제사로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구속의 경륜이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로 나누어졌다는 주장도 성경과 거리가 먼 것이지만 각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이 각각 달라진다는 주장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